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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핀덴 육아에세이] 완벽하지 않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.2021-02-26 |
출산 후 나의 시간은 아기를 기준으로 흘러간다. ‘지금 몇 시지?’보다는 수유한지 몇 시간 지났는지를 떠올린다.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는 몰라도 생후 164일 차인 건 안다. 첫째 딸 별이에게 내가 세상의 전부이듯 나의 세상에도 별이가 꽉 들어차 있다. ‘엄마’라는 새로운 역할은 아직도 조금은 낯설다. 여전히 종종 실수하고, 부모로서 알아야 할 것도 많다. 아기에게 간지럼을 태우면 안 된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다. 좋아서 웃는 건 줄 알고 자주 태우곤 했었는데! 이렇게 서툰 엄마여도, 별이에게 나는 유일무이한 안식처다. 그래서일까. 별이의 눈동자 속에 비친 저 여자가 어쩐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. 이렇게 말하면 남편이 웃을지도 모른다. 첫 한 달은 그토록 나약할 수가 없었으니까.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할 때였다. 가족 모두 외출하고 별이와 단둘이 있을 땐 극도로 불안해졌다. 가장 긴장됐던 건 대변 기저귀 갈기였다. 제발 똥은 싸지 말아 줘, 기도해봐도 별이는 꼭 우리 둘만 있을 때 똥을 쌌다. 당시의 나를 누군가 봤다면 시트콤 찍는 줄 알았을 거다. 일단 침대에 눕힌다. 조심스레 기저귀를 벗긴다. 앗, 침대에 깔아 둔 속싸개에 똥이 묻었다. 속싸개를 바닥에 내려놓는다. 잘못 놔서 뭉개 버렸다. 손빨래 거리가 늘어났다. 당황한 채 아기를 세면대로 데려간다. 한 팔로 부둥켜안고 한 손으로 엉덩이를 씻긴다. 갑자기 아기가 배에 힘을 준다. 마음이 급해 손바닥으로 받아 낸다. 아기는 시원한지 웃는다. 손에 묻은 똥을 닦아내던 내 기분이 어땠는지는 노코멘트.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땐 똥 하나에도 절절맸다. 어디 그뿐일까. 별이가 친정 엄마나 남편 품에서는 잘 먹고 잘 자는데 내 품은 불편한지 찡찡거렸다. 우유 먹이는 것도, 트림시키는 것도 익숙해지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. 당시의 나는 별이에게 사랑해보다는 미안해라고 더 많이 말했던 것 같다. 온종일 육아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아기 돌보는 것과는 별개로 또 다른 스트레스였다. 임신 기간에 완모(완전 모유 수유)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출산 일주일 만에 젖을 말리게 되면서 허둥지둥 분유 타는 법을 찾아봤다. 미리 사둔 기저귀가 잘 맞지 않아서 당근마켓에서 급히 다른 브랜드 기저귀를 구했다. 잠은 또 어찌나 안 자는지! 소위 등 센서를 막아준다는 육아템은 닥치는 대로 다 알아봤다. 유튜브와 맘카페를 넘나들며 정보 검색만 해도 하루가 모자랐다. 피로와 산후우울감이 켜켜이 쌓여가던 어느 날, 우연히 한 댓글을 봤다. "의사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. 아기는 엄마가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스스로 자란다고요. 아기들은 수시로 변해요. 지금 운다고 몇 달씩 우는 거 아니고 지금 잘 안 잔다고 계속 안 자는 거 아니고 배앓이도 몇 달씩 하는 거 아닙니다. 그냥 시간이 가면 좋아져요." 유독 마지막 단어가 가슴에 남았다. '그냥'. 이 단어가 이렇게 기분 좋게 들릴 수도 있구나. 평소엔 왠지 성의 없는 말 같았는데, 전전긍긍 일희일비 육아를 하던 초보 엄마에게 필요한 처방은 ‘그냥’이라는 단어였다. 모든 것에 ‘그냥’을 붙이기 시작하니 육아가 한결 나아졌다. 우유를 찔끔 먹다 남겨도, 낮잠을 도통 길게 못 자도, 그냥 흘러가는 대로 놔두었더니 정말 신기하게도 점점 잘 먹고 잘 자기 시작했다. 엄마가 되면 아이 앞에서 완벽한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, 그건 나의 욕심이었다. 아기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한발 물러나 빈틈을 만들어주었더니 그 틈 사이로 여유가 생기고 행복이 차오른다. 입을 한껏 오므리며 옹알거릴 때, 자기 손가락을 신기한 듯 관찰하며 꼼지락거릴 때, 본능적으로 뒤집고는 힘들다고 징징댈 때, 멀리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갑자기 싱긋 웃을 때, 그야말로 모든 순간순간이 더없이 사랑스럽다. 이렇게 엄마가 되어가는가 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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